최종편집 : 2021.09.21(화) 389호

 

 

 

(칼럼) 우리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이라는 사명감으로

2021.07.02 01:45:23

 

                                                                               박미나
                                                       세아베스틸어린이집 주임 / 심리상담사


 보육교사는 영유아에게 여러 차원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 오늘도 영유아의 안전한 보호와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보육교사인 나는 올해, 이제 막 걷기 시작하고 말문이 터지는 아이들의 담임이 되면서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다짐하는 것이 있다. 이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잘 가르치고 잘 기르는 좋은 선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제 막 15개월이 된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어린이집에 등원한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가는 이 아이는 나에게 양팔을 벌리며 달려오면서 ‘엄마’라고 크게 부른다.

 나는 이 아이를 ‘아들’이라고 부른다. 할 줄 아는 말이 ‘엄마’,‘아빠’ ‘맘마’ 이 세 단어가 전부여서 엄마처럼 생긴 모든 여자에게 부르는 호칭이지만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찡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보육교사의 하루는 손이 열 개여도 모자란다. 하나둘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 모여들면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는데, 열심히 선생님을 따라 하다가도 ‘어린 것’이 주 무기인 아이들은 어느새 물장난하거나 옷소매가 다 젖어버리는 게 다반사이다.
 
 잠시 사이에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 화장실 한번 못 가고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점심시간도 선생님들에게는 일의 연속이다. 영아들은 손으로 밥을 먹기도 하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바로 뱉어버린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식사를 챙겨주고 자리에 앉아보지만, 챙겨야 하는 아이들이 많아 이마저도 버거울 때가 있다. 뒤돌아서면 금세 선생님을 찾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작 나는 간신히 한두 숟갈 뜨기도 어렵다. 숨 쉴 틈조차 없는 전쟁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잠시 평화가 찾아오지만, 밀린 서류와 다음 날 수업 준비로 정신이 없다.

 보육교사는 영유아를 가르치는 교육자다.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의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보호와 교육을 하는 전문가로 아이들과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며 안전하게 지내고 연령과 발달 수준을 고려한 적절한 교육방법을 연구한다.

 그러나 간혹 보육교사를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정도로 생각하는 학부모를 만날 때면(‘선생님’도 아니고 ‘쌤’이라 부를 때면), 최선을 다해서 나를 다독여 보지만 선생님의 역할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래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오늘도 묵묵히 고된 업무를 견디는 보육교사들의 노력이 있기에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밝다.

 보육교사는 영유아의 안전한 보호를 위해 항상 주시하고, 안전한 어린이집 환경을 조성한다. 영유아의 권익 존중을 위한 일들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보육교사는 영유아를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개별적 욕구와 흥미, 의사를 존중하며, 영유아의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데 학부모와 보육교사는 공동의 양육자이며 조력자이어야 한다. 색안경을 끼고 보기보다는 개별 영유아의 기질과 개성을 존중해 최적의 보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로를 존중하고 정중하게 대하는 동반자의 관계일 필요가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기에 너무 빠듯한 보육환경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인내와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일한만큼 인정받고  교사로서 존경받을 수 있도록 보육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처우개선 등 현실적인 보육여건 개선에 집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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