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05.29(금) 338호

 

 

 

(칼럼) 슬픈 항도, 동학혁명을 기념해야 한다

2020.05.16 17:15:05

 

                                                        최연성 (군산대 교수/군산발전포럼 의장)

 

  며칠 전인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이날은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황토현 일대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전승일이다. 이 황토현 전승일을 작년에 국가기념일로 승격했다. 나아가 동학혁명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하면 다들 태인, 고부, 원평, 전주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곳이 주요 무대는 맞지만, 군산에서도 동학의 불꽃은 타올랐다. 작년 5월에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을 맞이하여 ‘군산, 동학에 물들다’라는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김중규 박물관장은 잊었던 역사의 장면을 찾아내어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었다. 작은 시립 박물관으로서는 대단한 실력이며, 열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전시회에서는 49명의 군산 출신 농민군을 일일이 거명하며 그들의 행적을 조명한 바 있다. 봉건제도와 외세에 저항하며 뜨거운 피를 뿌렸던 자랑스러운 선열들이 우리 앞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셨다.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군산에 온 서산군수 성하영의 보고에 따르면 군산진의 아전과 백성들이 대부분 동학에 참여하여 무기로 무장하고 내왕하는 배들의 곡물을 빼앗아 쌓아두었다고 한다.

  성하영은 동학농민군을 공격하여 창고에 쌓아둔 쌀 602섬과 조 80섬을, 콩 7섬을 군산진 첨사에 맡겨두고, 동학활동을 한 좌수 문규선, 곡식을 맡은 박가, 최가, 도포수 문가 등을 체포하여 총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관가와 군에까지 동학은 널리 퍼져 있었던 듯하다.

  혁명 당시 항도 군산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동학군이 호남을 장악하고, 전주 감영까지 쳐들어오자 놀란 고종 임금은 홍계훈을 초토사로 임명하고 인천항에서 창룡호, 한양호라는 군함 두 척에 경군을 태우고 군산포로 가게 한다. 동시에 청나라 군함 평원호는 청병을 태우고 군산포로 간다. 군산포에 하선한 이들은 임피를 거쳐 전주로 진격했다. 이때가 1894년 갑오년이다.
 
  동학군을 진압할 때만 해도 합작하였던 청일은 동학혁명이 진압되자마자 조선반도를 차지하려고 청일전쟁을 벌였고, 승리한 일본은 1899년 군산항을 개항하게 된다. 개항 전에 이미 군산항 일대에는 일본 장사치들이 득실거렸다.

  그리고 동학혁명 당시 일본전선 수백 척이 군산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어서 놀란 백성들이 오히려 청군을 도와서 일본군을 물리치려 했다는 기록도 있다. 동학혁명 당시 군산은 무능한 관군과 청군과 일본군이 뒤섞여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슬픈 역사다.

  군산 대야와 김제 청하를 잇는 오래된 다리가 있다. 낡아서 차량은 못 다니고, 사람은 아직 내왕할 수 있는데, 유서 깊은 새챙이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너 청하 쪽으로 가면 ‘김영상 선생 투수비’가 있는데, 찾는 이가 거의 없다. 김영상 선생은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인 노사 기정진, 간재 전우, 송병준 등과 교유했으며, 1905년 면암 최익현의 무성창의에 참여한 독립지사다.

  1910년 일본은 조선 지식인을 회유하기 위하여 이른바 ‘일황 하사금’이라는 것을 돌렸는데, 선생은 ‘내가 일왕의 간을 씹어 먹어야 하는데 그리 못하니 대신 너라도 먹어야겠다’며 일본 순사의 팔뚝을 물어뜯었다고 한다.

  그러자 불경죄로 체포하여 군산감옥으로 압송하는데, 만경강을 건너는 중 강물에 몸을 던졌다. 다행히 구조되었으나 군산감옥에 도착하시자 곧 숨을 거두셨다. 그해 여름에 일본은 금광동에 군산감옥을 세우고 독립지사들을 가두기 시작했는데, 선생은 그 감옥에서 순국하신 첫 번째 독립지사이다.

  1919년 3월 5일 구암교회에서는 호남 최초의 3.1운동이 시작되었다. 1927년 서수 이엽사 농장에서 옥구농민항쟁이 일어났다. 이런 저항운동은 동학혁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 박물관 전시는 잊었던 것들을 생각나게 하였지만, 아쉽게도 우린 또 잊어가고 있다.

  내항을 서성이며 갑오년 봄날을 떠올려 보고, 그런저런 군산의 저항기를 슬프고도 뜨겁게 풀어낸 조정래의 아리랑도 다시 들춰볼 때다. 5월은 그런 때다.

 


                                                                   

                                                                                                       (본 내용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사말 ㅣ오시는 길 ㅣ개인정보취급방침 ㅣ 신문구독신청 ㅣ 광고문의  ㅣ 기사제보 ㅣ 독자기고 ㅣ 이메일자동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