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04.22(월) 289호

 

 

 

[교육칼럼]꼴통!!! 의대에 가다.

 

 


# 새해 우리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얼마전 철순이(가명)가 모 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고 찾아왔다.

철순이를 처음 만난 건 철순이가 6학년때다.

엄마와의 갈등으로 도움을 받고자 함께한 해오름 자아성장 비젼캠프를 하면서 철순이와 나의 진한 우정은 시작됐다.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기 전에 철순이 어머님께서 부탁을 하셨다. “필리핀에 가면 철순이 머리를 꼭 좀 잘라주세요” 말씀을 듣고, 철순이를 보니 곱슬머리에 머리도 길고 정리가 되지 않아 좀 지저분해 보였다.

철순이와 이야기를 잘 해보겠다며 어머님을 위로 해드리긴 했지만, 엄마도 자르지 못한 머리카락을 내가 무슨 수로 자르겠나 싶어 내심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연구소에서 하는 해외캠프는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임과 동시에, 참가자들간의 역동적인 관계가 기본이다.

 낮 시간을 열심히 미견임파서블을 하면서 보내고, 밤이면 다같이 모여 활동피드백을 한다. 피드백중 철순이의 긴머리가 화제가 됐다. 

 나는 철순이의 머리를 자를게 할 요량으로 이야기를 꺼냈고 철순이는 이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며 자기 방어를 했다.

점점 논쟁이 심해지고, 옆에서 감기는 눈을 주체하지 못하는 형들은 철순이에게 “그냥 자른다고 해!”라고 하며, 강압 반, 회유 반으로 철순이에게 그 너저분한 긴머리를 자를 것을 권했다.

물론 철순이는 굴복하지 않았고, 시간은 계속 흘러서 다들 지쳐갈 무렵 철순이가 말을 꺼냈다.

 “제가 3학년 때요..엄마가 나를.. 개 패듯이 팼어요”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철순이는 엄마에게 “개 패듯이” 맞은 것에 대한 반감으로 머리를 길렀던 것이다.

정말로 엄마가 그렇게 심하게 때리셨는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철순이는 엄마에게 심하게 맞았고, 그렇게 때린 엄마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엄마를 이길 힘이 없던 철순이는 억울한 마음을 꽁꽁 숨기고 있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엄마와 대적할 힘이 생기자, 엄마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단정한 모습보다 곱슬머리를 길게 길러 지저분한 모습의 자신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를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이러한 쾌재는 철순이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이 부른 쾌재일 것이다.

어릴 때 보통의 아이들은 강압적인 부모의 지시에 반항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순응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은 힘이 없어 묵묵히 말을 듣는 것 같지만, 힘이 생기는 사춘기가 되어 성 에너지가 올라오면, 아이들은 반항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부모가 바라는것에 대해서 은근히 하지 않음으로 해서 엄마를 화나게 하고, 속을 뒤집어 놓기도 한다.

이것을 ‘수동 공격적’이라고 한다. 수동 공격적인 아이들은 앞으로 내민 손에는 꽃을 들고, 뒤에 감춘 손에는 비수를 든 것과 같은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는 엄마(양육자)의 말을 잘 듣는 것 같고 매 번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지만, 사실은 뒤에서는 엄마(양육자)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지 않아 버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엄마(양육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의식은 이를 모르지만 말이다.

철순이는 캠프에서 자신이 왜 그렇게 엄마가 원하는 머리 자르기를 싫어했는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굳이 머리를 안 자르겠다고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만약 철순이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면,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 당연히 머리를 잘라야 하기에, 머리를 기르겠다는 고집으로 엄마를 괴롭힐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수많은 역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 역동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그러한 역동은 아이를 위한 손짓이었을 수도 있고,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손짓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어떤 의도로 내 아이에게 손을 내 밀었는지 보다 내 아이가 그때 느꼈던 감정인 것이다.

아이의 마음에 난 흠집이 작다고 해서, 흠집이 아닌 것은 아니다. 흠집은 흠집이다. 아이가 느꼈을 그 당시의 감정은 내가 이해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부모의 사과로 인해 내 아이가 그 상처가 아물었다면 그것으로 더 이상 내 아이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쓸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그 에너지를 모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라도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다. 부모에게서는 더더욱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녀에게 주는 사랑이 내 아이의 마음에 흠집을 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내 아이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것이 정말 내 아이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인지, 나의 욕심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겠다.

 

/유 계 환

국립목포대학교 겸임교수
동부심리상담교육원 원장
해오름가족건강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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