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0.23(수) 312호

 

 

 

[군산이야기]군산의 근대 길 위에서 탁류 속 배경을 만나다!

2017.11.16 15:15:45
 

군산에는 채만식의 탁류 속 공간적 배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선은행은 초봉이의 첫 남편인 고태수가 근무하던 곳이었다.

길 건너 앞쪽에는 미두장이 있던 자리가 있다.

군산탐험대는 탁류길 답사를 위해 조선은행 뒤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났다.

바람이 약간 차다.

정주사가 미두장 앞에서 돈을 갚지 못해 젊은이에게 멱살을 잡혔다가 겨우 모면하고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걸어갔을 째보선창 길을 따라 함께 걸었다.

썰물 때다. 갯벌이 거대하게 드러나 있다.

붉게 녹슨 닻에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낡아 쓰러질 것 같은 얼음 창고 앞에 섰다.

일본인들은 쌀만 가져간 게 아니다. 생선도 가져갔다. 생선을 가득 담은 어상자 위에 얼음 조각을 가득 쟁여서 가져갔다.

정주사가 착지한 째보선창에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삭아져가는 흔적들이 널 부러져있다.

그 많던 부쩍이는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녹슨 철공소의 망치소리만 가득하다. 멀리 보이는 민야암 등대는 시간속 흐르는 사연들을 다 보고 있었겠지.

서천 땅에서 선친이 물려준 논 한마지기와 밭 뙈기 4천평을 팔아 빚 갚고 다섯 식구가 똑딱선에 의지해 군산에 착지했던 정주사네도 보았겠지.

동영 고개를 지나 선양동 콩나물고개에 있는 토막집으로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을 정주사를 따라 우리도 걸었다.

죽성로 가구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옛 해양대학교 건물이 있다.

그 앞에 일본이 전쟁 때 사용하려고 만들었던 포 공장이 있어서 들어갔다.
 
공장 안에는 그 옛날 쓰던 용접 도구와 쇠 자르던 기기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뒤로 돌아서서 다시 모시전 거리를 걸었다. 양키시장을 지나 초봉이가 근무했던 첫 직장인 전북약국(제중당 약국)에 다다랐다. 약국에 밖을 내다보면 서 있을 가족 부양의 그늘진 미모의 초봉이가 막 아는척이라도 할 것 같아 약국 속을 기웃거려 본다.

길 건너에는 남승재가 하숙을 했던 자리와 사선으로는 남승재가 근무한 금호병원 자리가 있다.

중앙로 2가(소화통)를 걸었다.

길게 줄지어서 걸었다. 내가 살고있는 고장을 알고 싶어 군산평생학습센터에 모인 군산탐험대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정주사네가 군산에 와서 처음 마련한 자그마한 기와집이 있었던 큰샘거리를 지나갔다. 정주사의 아들 형주가 막내가 다녔던 중앙초등학교 앞에서도 멈추었다.

드디어 임정골 뼈골목을 지나 한참봉네 쌀가게에 이르렀다. 저녁거리의 곡식을 얻기 위해 뭉기적거리며 바둑을 두면서 저주기도 하다가 드디어 외상으로 한 봉다리의 쌀을 얻어가는 정주사의 뒷모습이 상상되어지는 고갯길이다.

미두로 집까지 팔아넘겨버리고 선양동 산말랭이로 이사온 정주사, 산 끊어진 곳에 표지석만 남아있다.

선양동 산마루에 있는 정자에 올랐다.

군산시내가 사방팔방으로 다 보인다. 도심 중간에 있어 해가 뜨는 것도 제일 먼저 보이는 곳이다. 선양동, 해가 먼저 뜨는 동네에 정주사의 집이 있었다.

비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근대의 부작용이 돈 때문에 죽고 죽이는 탁류와 같았던 일제강점기 식민 상황을 풍자와 해학으로 묘사한 채만식 작가의 통찰력이 빚어낸 공간을 실컷 듣고 걸었던 날이었다.

낡은 벽을 타고 야무지게 오르는 담쟁이가 그리고 까치발을 들고 있는 것 같은 노랑꽃이 매우 인상적이라서 한 컷 담았다.


/문정현 (사)아리울역사문화 대표

 

 

 

 

 

인사말 ㅣ오시는 길 ㅣ개인정보취급방침 ㅣ 신문구독신청 ㅣ 광고문의  ㅣ 기사제보 ㅣ 독자기고 ㅣ 이메일자동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