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10.16(금) 515호

 

 

 

    4쪽 / 5쪽 (총 49개)
필자가 태어난 시골에 당산 나무가 있었다. 마을 앞 논에 마련된 동산에 한그루가 있었고 우리집 울안에 또 한그루가 있어 암수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고 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수탈의 현장인 호남평야, 그 호남평야의 한곳에서 문화재를 알려주는 유물이 발산리에 위치한 석등과 석탑, 그리고 죽산리 탑동 부락에 있는 3층 석탑이다.
[내고장탐방] 상주사 2014.09.26  (2680)
익산 함라에서 임피로 진입하는 길목, 고즈넉한 마을 한 곳을 돌면 소담한 산중턱 자그마한 사찰이 드러난다.
군산을 수탈의 도시라고 말한다. 농경시대에서 쌀은 식량이자 돈이었다. 그 중요성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쌀을 가져가기위한 도로를 만들고 항구를 개항했다.
째보선창에서 바라보는 금강의 물은 탁류로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생선비린내가 풍기고, 출어를 기다리는 어선들이 머리를 부두에 대고 즐비하게 서 있다.
생활의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일제의 탄압에도 흔들림 없이 살았다, 마치 진한 여름 풍성하게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여유, 땅 속 깊숙이 뻗어내린 바로 그 뿌리, 탄탄한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한(限) 이라는 설움의 자리를 비워 두어야했던 민족, 환희의 웃음보다 시름 젖은 눈물이 더 많았던, 굳이 포용력이 있다고 말하기보다 마음속으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살벌했던 일제 총칼 앞에 두 눈 부릅뜨고 맞선 유관순, 나라 지킬 일념에 도시락 탄약 들고 몸을 던진 윤봉길 의사, 참다 참다 더 이상은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일어섰던 노동자, 농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있었..
우리 민족을 가려 흔히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한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순수하고 깨끗한, 청렴하고, 결백하며 결코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한 조각을 내어 오히려 아홉 가진 사람의 열을 채워..
여객선이 지나가며 일으키는 하얀 포말, 푸른 파도 갈매기의 군무가 여름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선유도에 다다르면 검푸른 바다위로 올망졸망한 섬들이 희뿌옇게 자태를 드러낸다.
◀  [1] [2] [3] [4] [5]  ▶
   

 

 

 

인사말 ㅣ오시는 길 ㅣ개인정보취급방침 ㅣ 신문구독신청 ㅣ 광고문의  ㅣ 기사제보 ㅣ 독자기고 ㅣ 이메일자동수집거부